반응형

발렌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설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달하기도 하고 연인끼리 데이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발렌타인데이가 무슨 날이기에 서로 초콜릿을 선물을 하고 설레는 날이 되었을까요?

 

그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렌타인의 유래에 대해서
발렌타인의 유래

 

반응형

 

성 밸런타인으로부터 유래된 속설

시작은 성 밸런타인을 기리기 위한 날이었어요

 

서지 226년에서 269년 사이, 유럽을 지배하던 강대국 로마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곳에 황제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스우스 2세가 군단병들에게 결혼 금지령을 내린 것인데요

가족이 생겨버린 군단병들은 탈영을 할 수 도 있고 전투에 있어서 불안요소가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결혼 금지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결혼 금지령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이는 젊은 남녀들에게 절대 따를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이때 한 가톨릭 사제가 이러한 황제의 법이 엄격한 상황 속에서 몰래 결혼을 시켜주거나 직접 주례까지 봐주고 있었습니다

이 가톨릭 사제는 교회 순교자로 발렌티누스 라 불리는 사제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제의 일들은 황제에게 발각되었고 황제는 그 사제를 처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제가 처형되기 전 감옥에 갇혔을 때 너무 안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감옷에 있던 교도관의 딸로 알려진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2월 14일, 사제가 처형을 당하는 날이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그 시각에 사제는 사랑에 빠진 그 여인에게 편지를 한통 보내게 되는데요

그리고 그 편지에 마지막 줄에는 사제가 남긴 마지막 사인이 있었는데요 그 사인은 오늘날에 발렌타인데이에 사용하는 표현인 "From Your Valentine"이라는 사인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월 14일은 처형당한 발렌티누스를 기리기 위한 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속설일 뿐입니다

이중 확실한 것은 '성 발렌타인'이라는 한 교회의 순교자에게서 유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5세기에서 15세기인 중세시대에의 영국과 프랑스에는 '발렌타인' 이라는 성직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현대의 발렌타인 데이는 영국에서?

사랑을 전하기 위한 편지로부터 시작된 기념일

현대의 발렌타인 데이는 그 시초가 영국에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부르스'라는 시골 처녀는 짝사랑하던 '존 패스턴'의 마음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여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편지였는데요

자신의 마음이 담긴 구애의 편지를 전달하였고 결국 '존 패스턴'이 수락하면서 둘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녀가 고백한 날이 2월 14일이었고 이 날은 젊은이들에게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현대식 발렌타이데이의 시초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런던의 국립 우편 박물관에는 '부르스'의 구애편지와 함께 수많은 짝사랑 처녀들의 편지가 전시되어있습니다

이때 사랑의 전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이용된 것이 초콜릿이라고 하는데 이 초콜릿의 달콤함 때문에 이라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발렌타인데이가 보편화된 것은 17세기부터 인데요

이 당시에는 사랑하는 이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친구 간이나 전 사회계층 간에도 작은 선물, 편지 등을 표시하는 형태로 기념이 되었고 이러한 형태가 18세기 중엽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18세기 말부터는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쇄된 카드 대신 손으로 쓴 편지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우편료가 저렴했기 때문에 발렌타인 축하카드가 보편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에서도 수제 발렌타인 축하카드를 교환하기 시작했는데 1840년도부터는 대량 생산형 발렌타인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밸런타인데이 카드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보내지는 카드가 되었고 이중 약 85%가 여성이 보내는 카드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발렌타인
한국의 발렌타인

  • 한국에 전파되기 시작한 20세기

이러한 밸런타인데이가 한국에 전파된 그 시작은 일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20세기 일본에 방문한 서양 선교사들을 위해 일본의 지식인들이 선물을 준비하는 데서 시작되는데요

1936년 고베 모로조프 제과라는 곳에서는 "고마운 분들에게 마음을 전합시다"라는 이벤트를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을 판촉 목적으로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전하는 유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이 이벤트는 대중의 관심을 얻는 것에 실패해서 큰 성과를 이루진 못합니다

이후 1958년, 전행 후의 일본에는 서양문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도쿄 아오야마에 있던 '메리 초코'라는 양과점에서는 '메리의 발렌타인 초코'라는 상품을 만들어 백화점 등에서 판매하게 됩니다

이때 마케팅으로 여자가 선물을 주는 캠페인을 만들어보자 하였는데 이 때문에 오늘날의 발렌타인데이처럼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케팅도 당시에는 사회적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초콜릿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여성들의 페미니즘으로부터 인데요

1963년, 가부장적인 사회의 일본에 미국을 중심으로 확대된 여성해방운동인 '우먼 리브 운동'이 일본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고학력의 여성 사이에서는 페미니즘이 퍼지기 시작하고 여성도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선물을 주고 고백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 밸런타인 초콜릿이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모리나가 제과에는 신문광고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보내요"라는 광고를 진행하는데 이는 일본 내 최초의 대기업이 참여하여 역사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초콜릿은 곧 고백의 의미였고 그렇다 보니 초콜릿이 고급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러니 가격은 당연히 비싸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초콜릿을 받는 남자도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받지 못한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을 받지 못한 남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 대기업이 있었습니다

1968년 소니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모리타 아키오는' 소니 계열의 잡화점을 통해 남성들에게 주는 "의리 초콜릿"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대기업의 전략은 일본의 대형 제과업들이 뛰어들게 만들었고 이러한 저가형 의리 초콜릿이 양상 되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발렌타인데이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기념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며 지갑을 탈탈 털고 있습니다

초콜릿은 고백의 선물이었는데 한 기업의 판매전략으로 모두의 초콜릿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럼... 초콜릿은 의미 없는 것 아닌가 싶은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겠죠?

발렌타인 데이, 남녀가 서로 설레는 날이기 전에 발렌타인데이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구독"과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